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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경과 신학

하나님의 도성 제 6권 정리

by 우리모두함께 행복해요.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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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태까지의 논증은, 세속의 이익을 위해 신들을 숭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영생을 위해 숭배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을 반박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6~10권을 이러한 후자의 믿음을 논박하는데 바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시 가장 존경받는 작가인 바로(Varro)가 주장한 신들의 견해가 얼마나 조잡한지를 밝히고 있다.

 

2. 마르켈리누스에게

 

이제 나는 기독교가 거부하는 여러 민족의 신들을 숭배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반하고자 하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도시국가의 세부적인 업무들을 관장하는 신들을 일일이 규정해 놓기도 하지만 이것은 지식인들이 꾸며낸 역사적 전승에 불과하지. 각각의 신들이 관장할 일들을 배정하고 이제는 그들을 아예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신들로 섬긴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 기원전 116-27년)

 

바로는 참으로 뛰어난 지식인이었지만, 지상의 도성이 지닌 풍습과 법률에서 자유롭지 못했지. 그는 무려 마흔한 권이나 되는 역사서들을 집필했지. 인간사에 관한 것이 스물다섯 권, 신들에 관한 것이 열여섯 권이었지. 매우 치밀한 책들이지만, 이 책들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 없더군. 그가 인간사를 쓰고 신들의 일을 나중에 쓴 이유를 인간의 도성이 먼저 있었고 그에 따라 신들에 관한 제도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더군. 하지만, 참된 종교란 지상의 도성에서 제정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지. 참된 종교라면 하늘의 도성을 세워야 맞지. 참된 종교는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시고 가르치는 종교이며, 당신을 참되게 숭배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네.

어쨌든, 바로는 신에 관한 이론을 신화신학, 자연신학, 민간신학의 세 가지로 분류했더군.

신화신학에는 신들이 온갖 추행을 저지르는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하지. 심지어 천박한 인간들의 추잡한 짓들까지도 신들의 몫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지.자연신학에 대해서는 논쟁들을 소개만 하더군민간신학은 도시의 시민들, 특히 제관들이 알아야 할 사항들이 들어 있더군. 공식적으로 숭배해야 할 신들의 이름과 제사방법을 설명했지.

 

바로 자신은 자연 신들을 숭배하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국가의 민속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더군. 바로의 설명은 시인들의 설명들과 마찬가지로 허위에 가득 차 있었네. 그 누구도 설화신학이나 민간신학을 통해서는 구원의 생명을 얻을 수 없지. 설화신학은 극장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들의 추행을 공연하듯 알리고 있지. 민간신학이라는 것은 도시의 신학으로, 설화신학의 추잡함을 교묘하게 뒷받침하고 있을 뿐이지. 곧 극장과 연극의 신학인 설화신학이 민간신학으로 포장되고 있는 셈이라네.

예를 들어 헤라클레스 신전에 몸을 팔러간 여인이 꿈에서 헤라클레스와 음행을 한 후, 신전을 나서다가 부유한 젊은이를 만났고, 결국 그와 혼인하였다가 그의 상속인이 되었고, 로마를 자기 유산의 상속인으로 지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바로는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시인들이 아니라 백성들 이야기로, 배우들의 공연이 아니라 성스러운 의식으로, 극장이 아니라 신전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 셈이지. 이렇게 보면, 로마의 신들은 본디 인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네. 심지어 각 신들의 고유한 직책에 맞추어 기도해야 인간들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하지. 과연 극장의 연극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이것들이 도시를 구원할 신들일까? 부도덕, 자가당착, 천박성, 허위에 관한 한 극장신학이나 도시신학 모두 마찬가지더군. 그 어느 것에서도 영생을 기대할 수는 없지.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바로에게 부족했던 자유로움은 세네카에게서 볼 수 있지. 그는 바로가 극장신학, 설화신학을 비판한 것보다 더 강력하게 민간신학, 도시신학을 비판했지. 세네카는 카피톨리움에서 통상적으로 거행되는 행사들을 보면서 미치광이나 광대의 일이라고 비판했지. 바로는 시인신학을 비판함에 그치고 민간신학을 비판하지 못했지만, 세네카는 과감하게 민간신학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었지. 미신에 대한 비난은 물론이고 심지어 유대인들의 안식일 전통까지 비난했지. 분명한 것은, 신화신학(라틴어로는 설화신학), 자연신학, 정치신학(라틴어로 민간신학)에서는 영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지. 영생, 즉 영원한 행복은 참된 행복을 베푸시는 분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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