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은 벌이며, 아담의 죄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죄와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볼 순서군.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를 버리는 것이요, 이것을 육의 사망이라 할 수 있지. 만일 하나님이 영혼을 버리신다면 그것은 영의 사망이겠지. 첫째 사망은 육체의 죽음이요, 둘째 사망은 영의 사망이라네. 만일 우리가 영혼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그 영혼이 또한 육체를 버린다면 여기에 두 가지 사망이 모두 발생하는 셈이지. 비록 하나님을 배신한 영혼이라 해도 육체적 생명은 이어갈 수 있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불행의 극치라 하겠네.
그렇다면, 도대체 죽음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최초의 인간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어떤 죽음도 겪지 않았을 것이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의 후손은 죽음의 해를 입은 자들로 출생하게 되었지. 말하자면, 처음 사람에게는 죄의 벌이지만 그 후손들에게는 타고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 이것이 바로 죄와 죽음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라 하겠네. 그러나 처음 사람들이 죄의 벌로 죽음을 맞게 되고 그 후손들이 죄를 짓고 죽을 존재가 되었지만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의 결박에서 풀려나야만 한다면, 영원한 형벌인 둘째 사망은 당하지 않게 된다네.
더구나 순교자들의 경우에는 뜻이 달라지지. 믿음을 버리라고 박해하는 자들에 맞선 순교자들은 오히려 죽음으로 의를 실현하게 되는 셈이지. 죽음은 태어나는 자에게 이어지는 형벌이지만 신앙과 덕성으로 감내하는 경우에는 부활하는 자의 영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들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신의 죽음은 주저하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이라네. 그렇다고 죽음 자체를 선으로 보아서는 안 되지. 죽음은 처음 사람의 후손들이 타고난 벌이지만, 경건과 의를 위해 죽는 것은 부활의 순간에 영광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네. 진리를 위해 첫째 사망을 당하는 성도들은 둘째 사망에서 해방된다는 뜻이지. 죽음이 악인에게는 악이요 선한 자들에게는 선이 된다는 말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지.
어쨌든, 우리가 말하는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육체 속에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로 인해 인간은 이미 죽음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지. 흔히 죽음 전, 죽음 중, 중음 후라는 세 가지를 말하기도 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 죽어가는 자, 죽은 자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 성서의 용어를 쓴다면, 죽은 자들은 부활하기 전까지 죽음 중에 있고 주의 은혜를 힘입지 않는다면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없다고 하겠네. 본래 사람은 죽음을 본성으로 가진 존재로 창조되지 않았으나 아담 안에서 죄의 벌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지. 첫째 사망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군..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떤 철학자들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만 완전한 행복에 이른다고 하더군. 그들은 자만심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람 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지. 오히려 기독교에서 교리를 꼬투리 잡아 비난할 것을 찾는 자들이지. 그래서 그들은 영혼의 행복을 추구하거나 영혼이 육체 안에 항상 머물기를 원하는 일은 영혼을 비참한 사슬로 묶는 짓이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인간적인 추측들은 결국 철학자들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기 쉽다네. 플라톤 학파에서는 육체를 저급한 것이라고 경시하고 회피하는데,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처음 사람들에게 만들어준 육체는 선한 것 아니겠는가? 정작 우리가 회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죄짓기 능숙한 우리의 육체적 쾌락과 저급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탐욕 아니겠는가?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최초의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단순히 상징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더군. 그리고 낙원의 과일나무들을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삶의 덕목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 낙원에 관해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야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아도, 만일 상징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처음 사람들과 낙원의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진리를 부정한다면 이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일세. 성서가 말하는 처음 이야기에 대한 진실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
2. 죽음 이후 성도들의 부활
죽음에 관한 이해에서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 주제는 성도들의 부활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지. 과연 영적인 몸이 될 것인가 혹은 육적인 몸으로 부활하는가? 내가 보기에, 성서가 말하는 것을 종합하면, 그때에는 인간이 지상의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하늘의 존재가 될 것이므로 하늘의 도성에 살기에 적합한 존재가 될 것이네. 처음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 그 몸은 육적인 것에 불과했다고 보아야 하겠지. 하지만 용서와 영생의 은혜에 의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신령한 몸으로 살게 된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은 아니지. 둘째 사망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육신으로는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겠지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지. 육체와 영혼에 관한 단어들을 총동원하고 성서의 가르침을 종합해 본다면, 처음 사람의 육체는 아예 죽지 않을 몸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죄짓지 않으면 죽지 않을 몸이었다고 할 수 있지.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건대, 우리의 육체가 영혼에 의해 살듯이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살게 되는 것이지. 인간의 영혼이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떠나게 된 것이 문제였던 셈이지.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성도들은 부활의 때에 거룩한 천사들처럼 신령한 몸을 받게 되고 죽음에 이르지 않게 될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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