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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경과 신학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정리

by 우리모두함께 행복해요. 202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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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몰 웅덩이 증상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적 영역인 내면세계가 행동 영역인 외면세계를 다스려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어느 날 아침 창 밖에서 일어나는 두려운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 앞의 지반이 내려앉아 플로리다 사람들이 함몰 웅덩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계속 꺼져 들어가는 웅덩이 속으로 자동차와 도로 그리고 잔디밭이 함몰되어 갔고 그다음은 아파트가 무너져 들어갈 차례였다.

 

아마도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함몰 웅덩이와 같이 무너져 내리려는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피곤으로 무감각해진 느낌, 실패감,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목표에 대한 쓰디쓴 환멸감 등을 느낄 때 내부에서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삶 전체가 끝없는 심연으로 빠져들어 갈 것 같은 붕괴 직전의 위기를 느끼게 된다. 이 점은 바로 내적영역, 즉 내면세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다. 따라서 문제는 내면세계가 극도로 혼란되거나 약해져 있는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함몰적 웅덩이 증상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다.

1) 내적 영역 = 내면세계: 우리의 내면세계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부분이다. 이 세계는 선택과 가치가 결정되는 중심부이며 고독과 성찰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예배와 신앙 고백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세상의 도덕적, 영적 공해가 침투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곳이다.

 

2) 외면세계 = 공적세계: 우리의 내면세계보다도 다루기가 더 쉽다. 이 세계는 측정할 수 있고 눈에 보이며 계속 늘려 갈 수 있는 세계이다. 외면 세계는 일, 오락, 소유 그리고 대인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성공이라든가 인기, 재물, 미모 등으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 공적세계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많은 충성심과, 물질과 정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우리의 바깥의 공적 세계는 뚜렷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고, 또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에 그 유혹과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들은 우리의 관심을 끌고 행동하도록 하기 위하여 소리친다. 그런데 우리의 내면세계는 외적 세계만큼 큰 소리로 외치지 않기 때문에 도외시되고 무시된다. 이 내적 세계는 함몰 웅덩이처럼 무너져 내릴 때까지 쉽게 무시된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고백에서 이 같은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신들은 내게 거의 모든 것을 선사하였다. 나는 내 자신을 오랫동안 무분별하고 육체적인 향락에 빠져들도록 내버려 두었다.나의 사고는 모순으로 가득 차고 나의 정열은 도착되어 갔다. 나를 기쁘게 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쾌락을 추구했고 쾌락이 나를 지배하도록 허용했다. 그리고 그것은 무서운 수치감 속에서 내 인생을 마감 짓게 하였다.” 와일드의 고백은 극적인 단면을 말하고 있으나 내면적인 존재를 무시해 버린 많은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무거운 책임들을 지고 수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유능한 사람들이나 대단히 지쳐있다. 그들 역시 오스카 와일드처럼 내면세계를 너무 늦게까지 무시한 채 공적 세계에만 치중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2. 조종실에서 보는 시각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러한 질서로운 상태를 지키기로 매일같이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친한 친구가 미해군 핵 잠수함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지중해를 지나던 어느 날의 일이다. 잠수함 위로 많은 배들이 지나고 있었고 잠수함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여러 차례 요동쳤다. 급작스럽게 비정상적이면서 심한 격동이 일어나고 있어 함장이 돌연 조종실에 나타나 물었다. “아무 이상 없나?” “, 아무 이상 없습니다!” 친구는 대답했다. 함장은 잠깐 조종실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는군."라며 승강구를 통해 나가 버렸다..

 

배의 운명을 결정짓는 곳은 잠수함 내부에 있는 조용한 장소이다. 따라서 함장이 본능적으로 들여다보는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러나 승무원 중 누군가가 잠수함의 안전을 돌보는데 소홀히 한다면 그 잠수함은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잠수함이 부서져 가라앉아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내면세계의 조종실에 이상이 생기면 사람에게도 그러한 사고가 일어나는 법이다. 내면세계의 조종실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신경 쇠약, 정신 파탄, 자아 붕괴로 나타난다. 그러나 조종실에 아무 이상이 없다면 잠수함이 아무리 거친 환경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실패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단련되고, 성숙한 성품을 갖게 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외부 압력을 견뎌 내기 위한 원천이 내부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산산조각이 난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나 실패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갈릴리 바다에서 어느 날 오후 폭풍을 만났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자들이 곧 공포에 질린 채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그래서 배 뒤쪽에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에게 달려와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 폭풍우에게 잠잠하라고 명하신 후 제자들에게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개인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한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셨다.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즉 바꾸어 말하면 왜 너희 내면세계의 조종실은 질서가 잡혀 있지 않느냐?”

 

우리는 내면세계보다 삶의 외적인 부분의 온갖 소소한 데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우리가 어떤 외부의 폭풍이라도 헤치고 파쇄할 수 있는 힘을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데 말이다.

 

그러한 이유로 성경 기자들은 조종실로 가야 한다는 원칙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내면세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일이 최우선적인 것을 알고 또 그대로 가르쳤다. 창조주는 우리가 내면세계로부터 외면 세계를 지향할 때 가장 능률적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잠언의 한 기자는 내면세계의 원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 : 23)

 

작가가 조종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여기서는 마음으로 표현되었다. 잠언의 기자는 마음을 근원으로 보았고, 그곳으로부터 생명의 샘이 솟아나서 나와 다른 이들이 마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마음의 순전함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르는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 삶에 질서를 가져오는 마음의 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마음을 강하게 하고, 계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인간 삶의 조종실인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중하고도 훈련된 선택이 요구된다.. 우리는 마음을 지키기로 결정해야 한다. 마음의 건강과 풍요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을 끊임없이 보호하고 지켜 갈 때만이 가능하다.

 

즉 외면 세계를 본받지 말고 오히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다.

메리 슬레서는 미혼으로 19세기 말경 스코틀랜드를 떠나 형용하기 어려운 위험이 들끓는 아프리카에서 특별히 지치고 힘든 일과를 보냈던 어느 날 밤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요즈음 나는 나뭇가지 몇 개를 얼기설기 얹어서 침대를 삼고 더러운 옥수수 껍질로 이불을 하고 쥐들과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방에 세 명의 여자와 난지 사흘 된 아기가 누워 있는 곳에서 잠을 잔다. 이때 내가 잠을 설쳤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는 아주 고요하고 편안한 밤을 지냈다.” 메리의 고백은 내면세계의 질서에서 오는 평화를 말해 주고 있다.

 

3. 황금 새장에 갇혀서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 방식이 아닌 무질서했던 과거로부터 형성되었던 방식을 따라 살려는 경향이 내게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스트레스라는 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스트레스야말로 많은 책들과 연구의 주제이며, 또한 가슴 통증과 배가 거북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에 대해 거의 모든 경우에 의사들이 내리는 진단인 것이다.

 

미국 타임지에 실린 기사 가운데는 스트레스가 매년 미국 산업계에 500억 내지 750달러 상당의 지출을 발생시키고 있는데 이는 근로자 1인당 750불 이상이라고 쓰고 있다. 또한 스트레스야말로 심장병, 폐결핵, 우발적 사고, 간경화, 자살 등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보도하였다.

 

토마스 홈스 박사는 스트레스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통해 홈스 스트레스표를 개발하였다. 홈스 스트레스표는 특정인이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와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초래할 위험도를 나타내는 측정법이다. 홈스는 1년 총점이 200점을 넘으면 심장병, 정서 장애 및 건강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사망은 가장 높은 점수인 100, 해고당했을 때는 47, 새로이 가족 구성원을 맞게 될 때는 39점이 주어진다. 내 경험으로는 200점이 훨씬 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 만난 한 목사는 324점이며 어느 실업가는 412점이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쫓겨 다니는 사람의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늘 어떠한 목표와 목적을 향해 쫓기고 있고, 이러한 삶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몸에 어떠한 폐해를 주고 있는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의 내면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시작하셨을 것으로 보이는 곳으로부터 시작했다. , 부름 받은 사람과 쫓겨 다니는 사람으로 구별할 수 있다.

 

1) 쫓겨 다니는 사람은 오직 성취함으로써만 만족을 얻는다.

2) 쫓겨 다니는 사람은 성취의 표상들에 집착한다.

3) 쫓겨 다니는 사람은 보통 절제되지 않은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다.

4) 쫓겨 다니는 사람은 전인적인 인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다.

5) 쫓겨 다니는 사람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서툴고 미숙하다.

6) 쫓겨 다니는 사람들은 아주 경쟁적인 경향이 있다.

7) 쫓겨 다니는 사람은, 반대나 불신에 부딪히게 되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기도 하다.

8) 쫓겨 다니는 사람은 대개 비정상적으로 바쁘다.

 

이러한 예를 구약성서의 사울왕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사울왕은 자신의 황금새장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무엇인가를 일단 소유하면 그것을 꼭 쥐고 고수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신의 삶을 청지기의 삶으로 여겼던 대표적인 한 인물은 세례요한이다. 한 때 군중은 요한에게 속해 있었고 그의 카리스마는 군중들을 사로잡았다. 군중들이 그를 떠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해 갈 때 요한은 무엇인가를 잃고 있었는데 그것은 예언자로서의 인기였다. 그러나 요한의 관점은 사울왕과는 달랐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았고 대중의 인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요한의 시각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직위나 재산, 재능, 은사, 건강일 수 있다.

 

요한의 내면세계는 광야에서 건축되어 갔다. 갈등 가운데 처한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광야야말로 가장 심오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광야는 고독과 고난, 때로 고통을 의미한다. 광야는 사람에게 자유롭게 사색하고 준비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새롭게 충전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광야에서 형성된 내면세계는 요한에게 판단력과 지혜의 독립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4. 어느 성공한 못난이의 불행한 이야기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를 재촉하여 몰아대는 것에 감연히 맞서서 주님의 부르심에 조용히 귀 기울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부가 내 사무실을 처음 찾아왔을 때 그들은 가능한 한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대화의 주제는, 그들의 결혼 생황을 파탄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이었다. 부인은 이혼을 남편은 이혼이나 별거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통해 그 남자의 문제가 발견됐는데.. 이 남자는 자기 아버지가 붙여준 못난이라는 평판을 반증하려는데 자신을 온통 바쳤다. 그는 내면세계에 질서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일은 외적인 것뿐이었다. 그도 인정하는 바대로 여러 복잡한 사업 활동과 부의 축적이 삶의 전부였다. 그는 어떤 일을 해도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하든지 더 크게 되어야 하고 더욱더 강렬한 것이어야만 했다. 무엇이 그에게 충동질하고 있었을까? 과연 그의 내면세계에 질서라는 것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의 목표는 모두 외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내면세계를 가꾸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영적 건강은 중요치 않은 것이었으며 육체적 건강만이 중요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가족을 물질적으로 잘 부양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아버지의 칭찬과 인정이었다. 어떻게 해도 기뻐하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는 작고했는데, 중년이 된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아직까지도 기를 쓰고 있는데, 처음에 그저 하나의 목표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고칠 수 없는 생활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결코 잘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난 유형의 사람이다. 인정과 칭찬이 결핍되었을 때에, 존경받는데 굶주린 사람들이 일을 더 많이 하고 성공한 인물임을 상징하는 것들을 더 많이 갖고 세상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됨으로써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성장 배경과 불안정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들의 추구는 공적인 세계에 국한된 것으로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는 텅 비고 결핍된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2) 과도한 성취욕의 또 다른 원인은, 어린 시절 체험한 심각한 상실감이나 수치감에 있다. 그들은 친밀한 부모의 사랑과 정서적인 친근감의 결핍 상태에서 자랐기 때문에 많은 군중에 둘러싸이는 보상적 경험을 추구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면세계에 질서를 잡음으로서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지 않고, 외면적인 차원에서 그것을 추구하려고 선택하였다.

3) 쫓겨 다니는 사람은 또한 극도의 수치심과 안절부절못함 속에서 보냈던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

4) 어떤 사람들은 그저 쫓기는 것이 생활 방식이 된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오직 이기고 모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들의 부모가 그러했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중의 누구라도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이렇듯 쫓겨 다니는 것이 우리의 생활 방식임을 섬찟 발견케 될 것이다. 우리는 탁월한 그리스도인의 명성을 얻기 위해, 아니면 어떤 극적인 영적 경험을 얻기 위해서, 또는 섬기는 사람이기보다는 사실상 사람 위에서 군림하는 그런 부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쫓겨 다니고 있을 수도 있다. 가정 주부도 쫓겨 다니는 사람일 수 있고 학생도 그럴 수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쫓겨 다니는 사람일 수 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이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한 변화는 쫓겨 다니는 사람 자신이, 부르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한 발견은 눈먼 상태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빛을 찾는 데서 비롯된다.

과도한 성취욕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동기와 가치관들을 가차 없이 파헤치기 시작해야 한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과의 몇 차례의 대면에서 그래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과도한 성취욕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충고와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은 겸허하게 자기를 낮추고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것들을 포기하는 자기 훈련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5. 부름 받은 사람으로서의 삶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목적, 역할, 신분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청지기로서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확신의 질을 가지고 쫓겨 다니는 사람과 부름 받은 사람을 구분하려 한다.

 

그리스도께서 뽑으셨던 부름 받은 사람들은 기대치 않았던 지방 출신이지만 가장 독특한 자질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부르심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떤 사람은 쫓겨 다니며 살기보다는 부르시는 아버지의 손짓에 이끌려 산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대개 질서 있는 내면세계 안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부름 받은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는 동료인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선민의식에 따라 자신들을 정당화하기를 그치고 도덕적인 영적으로 회개의 필요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 대담한 사림이다. 그는 쫓겨 다니는 사람이었던 사울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었던 듯싶은데 그 궁극적 목적이란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것으로 하나님이 주신 임무였다.

 

1) 부름 받은 사람은 청지기임을 의식한다.

2) 부름 받은 사람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3) 부름 받은 사람은 요동치 않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

4) 부름 받은 사람은 확고한 위탁을 이해한다.

5) 평안과 기쁨

 

가장 버림받은 곳, 광야에 있던 미미한 존재인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이다. 왜 하필이면 요한에게? 그것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광야에서였을까? 광야는 고통과 고독과 고난을 의미한다. 누구라도 이러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광야는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살기 어려운 곳이다. 요한은 광야에서 메마름을 극복하고 사는 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가 요단 강에서 외칠 때 그의 말을 듣게 될 사람들의 영적 고갈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인간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마련이다. 그런 고로 광야는 요한에게 판단력과 지혜의 독립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부름 받은 사람의 특징은 요한의 청지기 의식, 정체성 의식, 자신의 역할에 대한 폭넓은 이해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한 확고한 위탁이다. 바로 이러한 속성들이 내면의 세계를 잘 세워서 그것으로부터 생명의 샘이 흘러나오도록 하는 사람의 특징들이다. 사울 왕의 생애와 요한의 얼마나 다른가! 따라서 우리들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사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요한이 될 것인가를 매일 씨름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축을 따라 살아간다면 놀라운 내면의 질서를 누리게 될 것이다.

 

 

 

6. 누구 내 시간 본 사람 없어요?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어요!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시간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신중하게 사용하려는 결심을 매일매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착수해야 할 첫 번째 단계는 시간 사용습관에 대한 가차 없는 자기비판이다. 이 세상은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 훈련이 없이는 그 누구도 탁월한 인물이 될 수 없으며, 그러한 인물이 되었다 해도 자기 훈련이 없이는 그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제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시간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면 결국엔 만사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가정이나 교회, 회사에서 부름 받은 사람의 경우에도 그런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착수해야 할 첫 단계는 시간 사용에 대한 가차 없는 자기비판이다. 현재 우리의 상태는 무질서한가, 그렇지 않은가?

나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일단 무질서한 상태에 접어들게 되면 내 책상이 흐트러져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질서 상태를 보여 주는 증후는 내 차의 상태에서도 나타난다. 즉 차의 안팎이 더러워진다.

무질서 상태에 이르면 자기 비하에 빠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빈번해지거나 응답하지 못한 전화 메모가 쌓이고 끝내야 할 일의 마감일을 놓치기 시작하는 등의 일이 발생하게 되면, 나는 내가 무질서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질서한 상태일 때면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허비하는 경향이 생긴다. 따라서 무질서는 끈기 있게 최선의 것을 하고자 하는 의지의 모든 국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무질서한 상태에 있는 자신이 해놓은 일을 보잘것없다고 느낀다.

무질서한 상태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부터 얻는 기쁨을 거의 얻지 못한다.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는데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무질서한 상태에 있을 때면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그것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의 시간 사용이 무질서해질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의 일, 그 밖에 우리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무질서한 나쁜 습관을 깨드리지 않으면, 우리의 내면세계는 철저히 무질서의 도가니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다스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개인적인 모든 시간 운영에 중심 되는 원칙은 간단하다. 즉 시간 사용을 위해서도 예산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에 대해 예산을 세우는 것은 익숙해져 있다.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할 만한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어디에다 우선순위를 두고 돈을 써야 할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한정되어 있는 시간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예수님은 개인비서도 없이 공적인 시간 약속들을 잘 처리하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와 묵상을 위한 자기만의 시간과 제자 훈련을 위해 모으신 소수의 사람들과 같이 보낼 시간을 위해서도 적당량의 시간을 할애하셨던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셨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첫째, 그분은 자신의 사역을 분명히 이해하고 계셨다.

둘재, 예수님께서는 시간 사용 면에서 한계를 잘 알고 계셨다.

셋째, 열두 명의 제자를 훈련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갖고 계셨다.

 

인간은 우선순위가 있는 곳에 시간을 쓰기 마련이다. 이상에 열거한 이유들로서 예수님께서는 결코 시간이 부족해서 쫓기는 법이 없으셨다. 자신의 사역의 목적을 숙지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순간들을 통해 영적으로 민감해져 있었으며, 또 하늘로 오르신 후에 자신의 사역을 영속시킬 만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셨기에 우리가 보기에 그럴싸하고 수락할 법한 어떤 초청이나 요구조차도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셨다.

 

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 내 능력과 한계와 우선순위에 준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할당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의 계획되지 않은 시간의 법칙

제1법칙계획하지 않은 시간은 나의 약점이 있는 곳으로 흐른다.

제2법칙계획하지 않은 시간은, 내가 속한 영역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

제3법칙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긴급한 일들에 소모된다.

제4법칙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대중의 갈채를 받는 일들에 바쳐지게 된다.

 

어떻게 시간을 회복할 것인가?

첫째,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생활의 리듬을 알아야 한다.

둘째, 시간 사용 방법의 올바른 기준을 가져야만 한다.

셋째, 시간 예산을 충분히 앞서 세울 때 시간을 통제하고 명령할 수 있다.

 

당신에게 무엇이 타협해서는 안 될 일들인가? 나는 무질서한 상태를 불평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질문에 아예 대답조차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질서 잡힌 하루하루와 질서 잡힌 삶과 질서 잡힌 내면세계의 시작이 필요하다.

 

 

 

8. 더 뛰어난 사람이 패했다.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날마다 지식과 지혜 안에서 성장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 시절의 경험 가운데 가장 큰 교훈을 얻은 것은 어느 봄날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펜실베이니아 길레이 경기에서였다. 그때 나는, 우리 학교 운동부 릴레이 팀의 아주 중요한 위치인 선두 주자로 있었다. 그런데 시작할 때 아무리 1등으로 뛴다 하더라도 끝가지 시합을 마칠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경주를 끝낼 때까지 지속적인 보조로 뛰어야만 한다. 그리고 훌륭한 주자는 경주의 마지막 코스에 가장 빠른 속도로 끝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운동선수의 능력은 그것이 적당한 인내와 합쳐지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세계의 질서를 잡는 일은 강한 정신적인 인내와 이러한 인내의 열매인 지적 성정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억압된 우리의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쉽사리 인간의 영혼과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사상과 제도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고, 또 일생 동안 계속되어야 할 지적인 성장에 자신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조숙한 성공 자는 대개 빨리 배우는 사람이다. 최소의 노력으로 전문가가 된 그는 대개 건강하며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어떤 것에 대해 자기 생각을 기탄없이 말하거나 설득하는데 자신만만해 보인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순조롭기 때문에 그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는가는 누구나 추측해 볼 수 있다. 어떤 경우는 평생 계속될 수도 있으나, 대개 30대 초반에 초반이 되면 어딘가에서 잘못될 가능성이, 재능 빠른 출발 자들의 삶 속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남은 인생의 경기는 재능이 아니라 인내와 자기 훈련으로 경주해야 한다는 첫 번째 암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사고력이 그 기능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계속 단련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고, 넓혀지고,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억압된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쉽사리 인간의 영혼과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사상과 제도의 희생자가 된다.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에 의존하게 된다. 생각 없는 행동은 인격적인 무질서를 야기한다. 사고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위험하게도 주위의 문화에 흡수되어 버리는데 그의 정신은 훈련되지 않고 채워지지 않았기에 세상에 도전을 줄 수 있는 질문들을 풀 능력이 결여되게 된다.

 

우리의 정신은 사고하고, 분석하고, 혁신하게끔 훈련되어야 한다. 내적인 생활이 온전히 질서 잡힌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데 힘쓴다. 그들의 정신은 방심한 채로 있지 아니하고 활동하며, 매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정기적으로 새로운 앎과 결론들을 창출해 낸다. 그들은 매일같이 정신을 단련시키는 일에 자신을 투자한다.

 

그러나 무딘 지성은 결국 내면세계를 무질서하게 만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근본적인 나태와 내면적인 무질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폭넓게 그리고 가장 창조적으로 사유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은, 거듭나지 않은 지성으로서는 소유할 수 없는, 그만큼 폭넓은 지적 가능성이 주어졌음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지적인 폭은 영원하고도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넓은 안목을 제공한다. 그리스도 안에, 그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사상 가운데서도 우리의 사상과 분석력과 혁신적인 생각을 결정짓는 진리의 기초가 있는 것이다.

 

9. 한 번도 읽힌 적이 없는 책의 비극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내가 배운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사용하려고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아내와 나는, 찾게 되면 참으로 반가울 특별한 제목의 책들을 구하기 위하여 헌 책방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내 게일아, 1840년대의 다니엘 웹스터의 전기 한 권을 찾아내었다. 그 책은 아주 흥미 있게 보였고, 우리 둘 다 전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게일이 그것을 구입했다. 책의 겉장은 아주 낡아 있어서 많이 읽힌 책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책은 단 한 번도 읽히지 않은 책이었다. 만약 사용되었더라면, 단지 서재를 장식해 주거나, 문이 닫히지 않도록 문 앞에 받쳐 놓거나, 어딘가에 이용됐는지는 몰라도 분명 읽힌 적이 없었다. 지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읽히지 않는 책과도 같이 어느 정도의 사용가치는 있지만 명철한 정신과 지적 능력이 잘 계발된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명에는 거의 가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웹스터 전기를 발견했을 때처럼 많은 사람들은 외적으로는 닳고 찢어진 삶의 표지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 내면세계의 많은 부분들은 미처 펼쳐지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고 즐기고 사용하도록 부여해 주신 모든 것을 이용하지 못한 것이다.

 

제 1의 목적: 지성은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제 2의 목적: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 안에 기록해 놓으신 메시지를 고찰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제 3의 목적: 정신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정보와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추구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어떻게 사람들이 내면세계 안에 지적인 체계를 세울 수 있는가?

 

1) 우리는 듣는 사람이 됨으로써 성장한다.

2)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 성장한다.

3) 우리는 훈련된 공부를 통해서 성장한다.

 

구약의 학자 에스라는 지성이 성장한다는 것을 믿은 사람이었다. 에스라는 연구했고, 그가 배운 것을 행했으며, 사람들에게 이를 가르쳤다. 그의 정신과 영혼은 충만해져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며 사람들을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로 다시 세우기 위한 일에 그를 사용하셨다. 우리가 진지하게 지성의 성장과 계발을 다룬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무한히 유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창조원리의 의도대로 우리의 예리해진 지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10. 마음의 정원에 질서를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만약 나의 내면세계가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늘, 나의 삶의 영적 중심부를 드넓히기로 결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공군 비행사인 하워드 러틀리지는 월남전 초기에 베트남 북쪽에서 포로로 잡혔다. 그는 전쟁이 끝날 무렵 풀려나기까지 적의 손아귀에서 몇 년동안을 비참하게 보냈다. 적 앞에서 란 책에서 그는, 참으로 견뎌내기 힘든 나날 동안 힘을 길어 올린 그 원천에 대해서 회상하고 있다.

 

나는 내 삶의 영적인 차원을 완전히 무시해 왔었던 것이다. 감옥에 갇혀서야 나는 하나님 없는 내 삶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러틀리지로 하여금 그의 전 생애 동안 내면세계에 중심부가 있었다는 것을 보게 해 준 바로 하트브레이크 수용소에서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중심부를 영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내면세계의 영적 중심부를 신체의 어느 부분에 있다고 지적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것으로 그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가장 친밀하게 교통 하는 것이다. 영은 그 속성인 영원성을 결코 잃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과의 교통이 거의 단절된 무질서한 상태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무질서는 내면세계의 다른 부분까지도 완전한 혼돈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영적으로 무질서하다는 것은 때때로 내적 평온의 결핍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요함이란 사실상 단지 무감각이나 공허함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기대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평정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공통된 염려는 영적인 힘을 유지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와 욕구를 꾸준히 지니는 데 있어서의 무능력에 있다.

 

내면의 세계의 정원이란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지혜를 주시며, 칭찬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시며, 격려해 주시고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곳이다. 이 정원이 질서 정연한 모습일 때 그곳은 고요하다. 그곳에는 번잡함과 소음과 혼란스러움이 없다.

 

내면의 정원은 섬세한 곳이라서 잘 가꾸어지지 않으면 어느 사이엔가 가시덤불들이 자라날 것이다. 하나님은 난잡하게 어지러워진 정원을 거닐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소홀히 내버려 둔 내면의 정원이 공허한 이유인 것이다.

 

내면세계의 영적 차원에 질서를 잡는 것은 바로, 영적인 정원을 가꾸는 작업이다. 그것은 조심스럽게 영적인 터를 일구는 것이다.

 

성경에서, 또 위대한 신앙인들의 역사를 통하여 영적훈련에 대한 명령과 선례가 수없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이 내면의 영적세계를 정돈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실 내적 공간을 만드는 자이다. 우리가 그 음성을 듣게 될 때 그 음성은 어떤 음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로렌스 수사는 이렇게 한다. “지금 시작하라!” 토마스 켈리는 이렇게 말한다. “저 중심부로 들어가라!”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청하신다. “내게 와서 배우라.”

 

 

 

11. 외부의 어떤 받침대도 필요치 않다.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만약 나의 내면세계가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홀로 고요한 시간을 갖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에서 일한 감리교 선교사 스탠리 존스는 노년기에 접어들어 신체마비 증세가 일어나 움직일 수도 없고 거의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잃지는 않았다. “내 믿음을 지탱시켜 줄 외부의 받침대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내 믿음이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썼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무시해 버리지만 기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네 가지 영적 훈련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침묵과 고독의 추구

내면세계의 영적 부분을 질서 있게 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성격에 적합한 장소와 시간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는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분은 시끄럽고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만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침묵의 친구이시다. 자연, , 나무들과 꽃들과 풀들이 고요함 속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보라. 해와 달과 별들이 고요 속에서 어떻게 운행하는지 보라. 고요한 기도 속에서 많은 것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의 외적인 활동 영역에서 많은 것을 줄 수 있다. 우리 영혼을 울리려면 침묵이 필요한 것이다. 주요한 것은 우리가 말하는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는 그것이다. 진정 우리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지 않는 말이란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지 못하는 말들은 어두움을 짙게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2) 하나님께 귀 기울임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내면세계의 정원은 침묵과 고독을 위해 침잠해 있을 때뿐만 아니라 환경 속에서 의식적으로 듣는 훈련을 하기 시작할 때에도 계발된다. 우리는 내주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깨우심에 민감해 있을 때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의 권능을 받는 설교가나 성경 교사가 말씀을 가르칠 때 그러한 들음이 가능할 수도 있다.

 

3) 일기 쓰기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 사색과 명상

신비적이고 명상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연구하면서 내면세계의 정원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일기 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수세기에 걸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기를 써 왔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 일기 쓰는 작업은 우리 자신이 결코 적나라하게 대면해 보지 못한 내 속사람을 마주하게끔 도와준다. 일기는 내 속 사람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끔 도와준다. 일기를 시작한 지20년이 지난 지금 일기장이 열리면 나의 마음의 귀도 열린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시면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일기의 주된 가치는, 내면세계의 정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고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도구로서의 가치에 있다. 일기 쓰기는 고요히 침잠하여 아버지와 교제하는 데 있어 놀라운 도구가 되는 것이다. 당신이 쓰도록 인도되는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신비하게 역사하시고 가장 깊은 곳에서의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4) 예배와 준비 기도로서의 기도

 

12. 모든 것은 입력되어야 한다.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가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의 태도와 행동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스탠리 존스는 고통스러운 임종의 순간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끈이 가장 튼튼한 것이다. 내 신앙을 받쳐 줄 외부적인 받침대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내 신앙이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언제나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니다. 그의 사역초기에도 일시적인 함몰 웅덩이 증상이 있었다. 일 년 이상을 영적, 육체적인 무력가에 시달렸다. “영적인 침체가 육체적인 침체로 이어졌다. 내적 체험이 외면 세계를 지탱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외적인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내가 체험하지 못한 것은 결코 설교하지 않겠다는 것을 인생의 신조로 삼고 있던 터라, 내면세계가 붕괴됨에 따라 외면 세계의 붕괴도 불가피하게 초래되고 말았다.”라고.” 그는 술회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내면세계의 정원에 입력된다는 것을 확신함으로써, 존스가 말한 대로 우리는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을 강화시키게 된다. 영적 훈련의 첫 단계는 고독과 침묵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배우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인 엔터키를 두드리는 것은 사색과 묵상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구절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러한 말씀을 향하여 우리의 내면세계의 문을 열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편 가운데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말씀이 많은데,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성품과 자녀들에 대한 그분의 지속적인 관심에 마음의 초첨을 맞추고 있다.

명상은 우리의 영을 천국의 주파수에 맞추는 것과 같다. 어떤 성경 본문을 택하여 그 말씀이 그저 자아의 가장 깊은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 가지 형태로 결과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곧 속죄, 확신,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 등이다. 명상은 적당한 양의 시간, 침묵, 혼자 있을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할 때에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사색하고 명상하는 훈련에 있어 다음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다. 그러면 그 메시지는 우리의 가슴속에 입력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의지하던 외적 버팀대들은 하나씩 치워진다. 그리고 우리의 내적인 정원은 더 풍성히 가꾸어진다. 결국 영적 훈련을 거치는 사람들은 그 내면세계가 보다 강건해지는 것이다.

 

 

 

13. 하나님의 시각에 맞추어진 안목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가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눈을 통하여 사건과 사람을 바라보는 훈련에 임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나의 기도는 그분의 계획과 약속의 말씀에 맞추어지길 원하는 나의 갈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도하기가 왜 어려운가?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문제에 대하여 갈등하는가? 그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해 보겠다.

1) 예배와 중보 기도를 부자연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2) 예배와 중보 기도는 우리들의 약함에 대한 묵시적 시인이기 때문이다.

3) 기도는 때때로 현실적인 결과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기도의 내용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20세기 초 구세군의 전도자였던 사무엘 고간 브랭글의 기도에서 발췌한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주님,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둔감하고 어리석어지는 것으로부터 저를 지키소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 즉 그렇게 훈련된 경주자에게 필요한 정신적, 영적, 체력적인 특성을 지닐 수 있도록 저를 도우소서. 저의 일에 성공을 주시돼 교만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너무도 자주 성공과 번영 뒤에 수반되는 자기만족으로부터 저를 구하소서. 육체적인 무기력함과 쇠잔함이 밀려올 때라도 영적인 나태와 방관함에서 저를 건지소서.”

찬양

내면의 정원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영적 훈련에 있어서, 그분을 우러르는 일이야말로 예배 중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어떤 기도 안에서 찬양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그분 자신에 관해 계시해 주신 것들에 대해 감사함으로써 경배를 시작한다.

 

고백

위대하신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는, 우리 자신, 즉 하나님과 비교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대하여 정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두 번째 요소인 죄에 대한 고백이다. “죄인인 나에게 긍휼을 베푸소서라는 기도는 단축된 고백의 기도이다.

 

중보 기도의 사역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의 편에서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보통 누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는가? 결혼했다면 물론 배우자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중보 기도는 또한 그 범위를 넓혀서, 가까운 친구들과 하나님께서 우리의 책임 하에 두신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과 기도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 권위와 책임이 커질수록, 중보기도의 능력을 계발하는 일은 더더욱 중요해지게 된다. 그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런 종류의 사역은 우리가 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보기도는 글자 그대로 두 편 사이에 서서 한 사람의 경우를 다른 사람에게 탄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누구를 위해 중보기도 하는가?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또한 그 범위를 넓혀서 가까운 친구들과 하나님께서 우리의 책임 하에 두신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과 교인들과 기도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14. 여가 이상의 휴식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만일 나의 내면세계가 질서 정연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서 그 분 자신과 모든 인류를 위해 제정하신 안식을 발견하기 위하여, 매일의 분주한 일상생활 속에 안식일적 평화를 굳게 붙잡기로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울리엄 윌버포스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서 19세기 초 영국 하원 의원이었다. 그는 정치가로 대영 제국에서 노예 제도를 불법화하는 역사적인 법률안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하원을 설득하는 일에 단호한 지도력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그저 평범한 업적이 아니었다. 실로 그것은 민주주의 역사상 정치가가 이룩한 공적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가장 용감한 행동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는데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가 이렇게 큰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윌버포스의 생활에는 잘 훈련된 견제와 균형의 모습이 있었는데 그의 전기를 쓴 린은 이렇게 말한다. “주일이 되자 평화를 되찾았다.” 윌버포스는 매 주일 정기적 휴식할 때마다 내면세계의 질서를 되찾았던 것이다.

 

성경적 의미의 휴식에는 내면세계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길이 있다. 이러한 휴식은 일상생활의 와중에서 정기적으로 멈춰 서서 우리의 삶의 근거가 되고 있는 진리와 헌신을 정리해 낼 때 이루어진다. 우리는 날마다 수천 가지 방향으로 밀리고 당기어지며, 많은 일을 결정하고 가치판단을 해야 하며,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어떤 진리의 기준에 의거하여 이러한 결정들을 할 것인가?

실로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최초의 ‘휴식자’‘휴식자’ 임을 계시한다. “일곱째 날에 그분은 쉬셨다.” 모세는 출애굽기 31 : 17에서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했다.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정말로 휴식을 필요로 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휴식하시기를 스스로 선택하신 것일까? 그렇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휴식과 일의 리듬을 창조 세계에 심어 두셨고, 또한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하나님 자신이 그 리듬을 지킴으로써 그 진리를 계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우리의 내면세계에 질서를 유지하는 열쇠를 친히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가 세속적 여가의 재미보다 안식일적 휴식의 평화를 선택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첫째, 안식일적 휴식은 그리스도인 가족끼리의 예배를 의미한다. 올바른 예배 안에서 우리는 내면세계의 휴식으로 이끄는 세 가지 측면, 즉 뒤돌아보고, 위를 보고, 앞을 내다보는 것 모두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둘째, 안식일은 개인 생활에 있어 휴식과 고요함을 사려 깊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이란 내면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휴식을 뜻한다.

세상 교회는 참으로 휴식을 취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을 필요로 한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여가가 아닌 진정한 안식일적 휴식에 의하여 규칙적으로 새롭게 되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이 휴식을 취할 때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얼마나 굳세고 탄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끝으로 내면세계의 질서를 소유한 그리스도인에 관하여 토마스 켈리는 말하고 있다. “전적으로 순종하고 전적으로 복종하며 전적으로 듣는 삶이야말로 놀랄 만큼 온전한 삶이다. 그러한 삶의 기쁨은 광채를 발하고 그로 인한 평화는 심오하며, 그것에서 나온 겸손은 깊이가 있으며, 그 힘은 세계를 뒤흔들고, 그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그 단순함이란 어린아이의 믿음과도 같은 것이다.”

 

15. 맺음말 : 물레질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질서 잡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하기로 기꺼이 결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기의 저명한 위인 중의 한 사람은 인도 독립운동의 불꽃을 점화시켰던 마하트마 간디이다. 그의 전기를 읽거나 그의 삶을 그린 영화 간디를 본 사람은 이 인도의 조지 워싱턴이 간직한 정신의 평온함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 간디는 내면의 질서 감각, 겸손 그리고 지혜와 판단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디가 손쉽게 작동할 수 있는 도구인 물레를 좋아했다는 사실에서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간디의 물레는 그의 삶에 있어서 무게 중심을 유지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인간 경험에 있어서 수준을 고르게 하는 기구였던 것이다. 물레는 그에게 언제나 자신이 누구이며 삶의 모든 현실적인 일들이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간디는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지만 물레질을 한 그의 행위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본받을 만한 일이다.

행동이 말보다 중요하다는 견지에서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이 내면세계의 질서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우리는 바쁘게 일하고 정신없이 계획을 세우고 재산을 모으고 여러 가지 회합과 세미나와 강연회에 쫓겨 다님으로써 효율성을 추구하기를 더 좋아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외부 세계의 활동에 주력함으로써 내면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위대한 신앙인들이 보여주며 우리의 쓰라린 영적 체험이 계속해서 증거 하는 것과는 정 반대인 것이다.

 

존 웨슬리는 나는 늘 바쁘지만 서두르지 않는데, 그 까닭은 영혼의 고요함을 유지한 채 해낼 수 있는 이상의 일에는 결코 손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의 공적 세계는 대중과 함께 살면서 권력자들과 협상하되, 변절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소수의 선한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해 나갈 수 있을까? 물레질하는 작업을 계속함으로써 가능하다. 그 물레질이란 시간 사용이 우선순위에 따라 정돈되고, 마음이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에 눈뜨기 위해 주파수가 맞추어지고, 영은 예민해지고, 안식일적 휴식의 평온함이 있는 고요한 중심부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면세계인데,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면 질서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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