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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경과 신학

하나님의 도성 제 11권 정리

by 새로운 인생 새로운 도전 새로운 출발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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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나님의도성 후반부는 여기서 시작되어, 지상의 도성과 천상의 도성의 기원과 역사와 종국을 설명한다. 우선 이 권에서는 선한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을 분리함으로써 두 도성이 처음으로 형성된 이야기를 하며, 이 기회에 창세기 처음에 있는 대로 세계 창조를 다룬다.

 

 

2. 마르켈리누스에게

 

성서에,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그 도성의 창건자가 우리에게 사랑을 불어넣었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그 도성의 시민이 되기를 열망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의 목적이요, 그리스도가 바로 그 길이시지.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아야 해. 현실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가장 확실해지지. 실제로, 이 세계는 창조된 존재임을 침묵으로 선언하고 있다네.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는 세계가 원자들의 우연한 운동으로 생성, 소멸한다고 했지. 플라톤주의자들은 조물주가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지. 기독교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세계를 지으셨고 시간까지도 창조하셨다고 믿고 있지. 그리고 태초에 빛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어떻게 아침과 저녁이 만들어졌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지.

 

그 와중에서 천사들의 창조에 관해 생각해 보게나. 그들은 빛 자체가 아니지만 창조주의 빛을 받아 낮이라고 불리게 되었지. 그러나 천사가 하나님을 등지면 악해지겠지. 하나님만이 선하신 존재이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한 것이지만 그것들은 타락할 가능성을 지닌 가변적 존재라 하겠네. 이렇게 본다면, 천사들은 오직 창조주의 빛을 받아야 행복을 누릴 수 있겠지. 지성을 지닌 존재가 행복해지려면,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선을 향유하고 그 안에 변치 않고 머물러야 하겠지. 이 점에 비추어 본다면, 플라톤주의에서 정령이라고 부르는 사탄은 진리에서부터 타락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말하자면, 그들의 선한 본성이 부패한 것이요, 빛에 반대되는 어둠에 속하게 된 것이지.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실 때, 하나님이 보시기 좋았던 것은 빛뿐이었지. 말하자면, 사탄은 빛을 등지고 어둠을 선택한 천사의 타락이야.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실체는 선한 것이요, 악은 다름 아닌 선의 결여라고 할 수 있겠네.

 

이에 대한 오해들이 왜곡된 교리를 만들기도 하지. 나는 마니교의 오류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오해에서 생겨났다고 보네. 그들은 하나님의 본성이 불변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했지. 그리고 악에 대해서도 그것이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라고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엉뚱한 교리를 만들어낸 셈이지. 마니교와는 다르지만, 오리게네스의 경우에도 이 부분에서 오류가 있다고 생각되는군. 오리게네스는 만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믿었지만, 이 세계가 선하신 하나님께의 창조물이기에 선한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았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보시며 좋았다.”고 하셨듯이 이 세계는 선하게 창조되었건만, 그들은 이 세상이 오히려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면서 죄의 무게에 따라 육체의 등급이 달라진다고도 했지.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게. 그림에서 사물의 그림자가 표현되면 더 실감 나는 그림이 되지 않겠나? 말하자면, 세상은 선하신 하나님에 의해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부패한 죄악이 발생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

 

이 부분에서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것은 누가 천지를 만들었는가?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만들었는가?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는 세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거야. 그 대답은 분명하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선하게 만드셨다.’는 것이지. 이 질문을 유추해 보면,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일세. 삼위일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군. 삼분법에 관한 것일세. 심지어 철학에서도 삼분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 그들은 학문을 자연학, 논리학, 윤리학으로 구분했지.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구분법을 발명했다기보다는 발견한 것을 적용한 셈이지. 물론 그들이 삼위일체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철학자들은 행복에 이르는 방법에서도 삼분법이 적용될 수 있다고 했지. 본성에 대한 이해, 지혜의 필요성,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그것이야. 이것을 빗대어 설명해볼까?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우리의 본성, 즉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얻어야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최고선으로 누리고 즐겨야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군.

 

어디 그뿐인가? 삼분법의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해봐. 우리는 존재하고, 우리 자신이 존재함을 인식하며, 존재하고 인식함을 사랑하는 자로 살고 있지. 내가 존재하고 내가 인식하며 또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에게 더없이 확실하지. 이러한 확실성 앞에서는 아카데미아 학파의 논리는 의미 없겠지. 그들은 만일 그대가 속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봐. 내가 속고 있다면, 적어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나? 존재하지 않는 자는 속을 수도 없잖아? 내가 속고 있다면,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실하지. 마찬가지로, 행복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존재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도 없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지. 심지어 불행한 삶도 죽는 것은 싫어하지 않는가? 모든 짐승이나 곤충이나 식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온 힘을 다해 죽음을 피하고 존재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처럼 분명한 것도 없지. 그중에서도 인간은 여타의 존재들과 달리 내면의 진리를 따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사랑하는 존재로 살고 있지. 말하자면, 존재와 지식과 사랑의 세 가지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셈이지. 사랑에 관해 덧붙이자면, 마치 물체가 중력에 따라 움직이듯 인간의 마음은 사랑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어쨌든, 분명한 것은 존재, 지식, 사랑의 세 가지 요소를 통해서도 삼위일체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점이지.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지금 하나님의 도성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네.

 

특히 우리는 지금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 하늘의 도성에 속한 거룩한 천사들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지. 그들 안에 불변하는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지. 이것을 다른 말로 설명한다면, 천사들의 인식은 마치 설계도를 보고 전체를 이해하는 방식과 유사하지. 천사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시 말해 이 세상을 만드신 영원불변의 원인과 이유를 따라 지식을 얻는다는 뜻이지. 이러한 천사들의 인식은 피조물의 인식과정보다 분명하고 확실하다고 하겠네.

천사에 관해 덧붙인다면, 창조에 관한 부분에서 이해될 대목이 있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봐. 엿새라는 숫자는 창조 사업의 완전성을 상징하는 것이지. 그리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일을 하셔서 거룩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안식하심으로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이지. 이런 생각에 반대하면서 천사들을 창조하신 시점이 여섯이라는 숫자 이전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 나는 이 견해를 논박하고 싶지 않네. 천사들이 창조된 존재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지. 더 중요한 것은 천사들 중에 두 집단으로 구분이 생겼다는 점이지. 사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어떤 천사들이 죄를 지어 이 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 감옥처럼 갇혀 있으며,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는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라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신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지. 본성이 선하고 의지가 바르며 하늘의 도성을 향한 순례자들을 모으는 천사들이 있고 이와 반대되는 집단이 있다는 뜻이지. 천사들 사이에 반대되는 두 집단이 있다는 것! 하나님의 도성을 시기하는 이질적인 집단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에 나타난 두 도성의 역사에 있어서 서곡과도 같은 부분이라고 하겠네.

 

 

3. 참고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4세기 중반에 태어난 고대 그리스 철학자다. 그는 행복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했고, 행복은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혼은 죽을 때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로마 제국 시대에 널리 퍼졌고, 중세 시대에는 쇠퇴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부활했다.

 

마니교

마니교는 2세기 중반에 이란의 마니가 창시한 종교로, 기독교와 불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마니교는 세상을 빛과 어둠, 선과 악으로 나누고, 빛의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빛과 어둠의 싸움에서 빛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니교는 로마 제국에서 박해를 받았지만, 5세기경에는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으로 퍼져나갔고, 7세기에는 아랍 제국으로 퍼져나갔다. 마니교는 8세기경에 아랍 제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 쇠퇴하기 시작했고, 11세기경에는 거의 사라졌다.

 

오리게네스

오리게네스는 3세기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성서학자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제자였다. 그는 성경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었고, 성경의 영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또한 영지주의와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했다. 오리게네스는 기독교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그의 사상은 중세 기독교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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