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처음에 천사들을 논한다. 곧, 어떤 천사들의 의지가 선하고 어떤 천사들의 의지가 악한 것은 무슨 까닭이며, 선한 천사들이 행복하고 악한 천사들이 불행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를 고찰한다. 그 다음에 인간 창조에 대해서 논하며, 사람은 영원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는 곧 하나님이셨다고 가르친다.
1. 마르켈리누스에게
천사들 사이에 두 도성이 나타났다는 것을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지. 천사들만 두 부류가 있겠나? 인간 역시 두 부류가 있지. 하지만 전체적으로 네 가지 그룹이 있다는 뜻은 아니야. 선한 천사들과 선한 인간들의 그룹이 하나이고 그 반대되는 그룹이 하나 있는 셈이지. 말하자면, 선한 천사들과 선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도성과 사탄 혹은 정령을 숭배하는 악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도성이 대립하고 있다고 하겠지.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네. 선한 천사들과 악한 천사, 즉 정령들의 욕구가 서로 상반되는 것은 그들 각각의 본성이 상반된다는 뜻이 아니야. 그들의 본성은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각각의 자유의지와 욕망이 중요한 차이를 낳은 것이지. 선한 천사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악령들이 불행한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지. 사실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악을 향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 하나님을 얻으면 행복할 것이요. 그분을 잃으면 비참하게 되는 것이라네. 행복에 이르게 하는 불변의 선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뿐이며 하나님께 합일해야만 행복할 수 있지.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는 가변적이며 자신의 부족함을 결코 스스로 채울 수 없어. 타락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것이요, 타락하면 부패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해악이 될 뿐이라네.
말하자면 천사가 타락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한 것이요. 이것은 그들의 본성이 달라서 생긴 일이 아니야.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은 스스로 악을 선택하고 부패해 버린 것이지. 그 결과 존재의 온전함, 아름다움, 건전함을 상실하고 선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키게 되고 말지.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지. 선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 게다가 각각의 존재자들이 질서를 지켜서 각자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모든 것은 각각의 존재를 보전하고 유지할 수 있는 셈이지. 최고 존재자와 함께하기로 선택한 천사들은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악령들은 최고 존재자를 배신하고 자신에게로 향했기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들을 악하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일까? 악한 의지의 원인은 도무지 행위자 자신의 선택 외에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지. 어떤 외부의 작용이 있어서 행위자의 의지를 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일세. 행위를 악하게 만드는 것은 행위자의 의지 그 자체지. 말하자면, 악한 행위의 원인은 악한 의지라고 할 수 있고, 악한 의지 그 자체에는 또 다른 외적 원인이 있을 수 없다네. 이러한 의지 그 자체에는 또 다른 외적 원인이 있을 수 없다네. 이러한 의지의 왜곡은 의지 스스로 보다 나은 선을 버리고 열등한 것들을 추구할 때 발생하지. 의지가 방향을 돌리는 그 대상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의지의 방향 전환 자체가 문제라 하겠네. 그것은 선에서 악으로 방향을 바꾸는 일종의 가치전도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군. 다시 말해, 의지 스스로 가치의 질서를 어기고 보다 나은 가치대신에 열등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라는 뜻이지. 예를 들어, 두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세. 그중 한 사람은 유혹에 넘어가고 다른 한 사람은 유혹을 이겨냈다고 해보세. 여인의 유혹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각자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요컨대, 의지가 왜 악해졌는지를 성찰할 때, 외부에 어떤 원인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네. 의지가 선의 질서를 무시한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의지가 악하게 된 것은 다른 원인의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의 질서에 대한 존중을 결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네. 의지 스스로 최고 존재자에서 등을 돌려 열등한 것들로 전락해 버린 것이 문제일 뿐, 그것 이외에 의지가 악하게 된 원인을 찾는 것은 마치 어둠을 보려 하거나 침묵을 듣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네. 게다가 이러한 결여 혹은 결함이 생겨난 것은 본성상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의지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생겨난 결함이지. 악에 대한 징벌이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 예를 들어보세. 황금 그 자체가 악해서 탐욕이 악한 것이 아니라 가치의 질서를 어기고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황금에 집착하는 것이 악하다고 해야 하겠지. 쾌락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네. 육체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는 의지가 문제 아니겠는가? 결국 의지의 선택 그 자체가 문제인 셈이지.
천사들의 타락도 마찬가지라네. 그들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해진 것이라 해야겠지. 최고선이자 영원불변의 하나님을 등지고 열등한 것들을 집착하여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지. 결여 혹은 결함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라네. 사실, 사랑의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에게도 성령을 통해 주입해 주신 능력이지. 그 사랑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들이 모인 거룩한 결사체를 우리는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이 도성에 속한 자들은 비록 지금은 가변적인 지상의 도성에 살지만 거기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지. 혹은 이미 죽어 안식을 누리는 자들도 이 도성에 포함된다네.
철학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인류란 개별적으로 사멸하는 존재들이지만 인류라는 종 전체로 보면 모든 인간이 영원하다고 하더군. 그래서 세계도, 인간도 항상 존재했다고 말하기도 하더군. 어떤 이들은 세계가 영원하지는 않아도 우리가 보는 세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수의 세계가 존재하거나 일정한 간격을 따라 수없이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 혹은 이 세계에 시작이 있었다는 주장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 그래서 어떤 철학자들은 시간의 영원한 순환을 말하지 않던가? 만일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은 끝없이 거짓 행복 혹은 참된 불행을 거듭할 뿐, 희망이 없지 않겠나? 순환론을 택하면 입구도 출구도 찾아내지 못할 것일세. 게다가 인류가 어떻게 종말을 맞고 어떤 결말을 볼 것인지 답 할 수 없을 거야.
내가 확신하기로 분명한 시작이 있다네. 이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었고 시간 자체도 창조되었지. 최초의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는 어떤 인간도 존재하지 않았지. 순환론을 주장하는 자들처럼 돌고 도는 것이 아니지. 시간은 순환과 상관이 없어. 그것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한 세기가 지나면 다음 세기로 질서 있게 이어져 흐르는 것이지. 우리는 직선의 길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을 인도자요 구세주로 모시고 살고 있지. 그리고 하나님은 단일한 인간으로부터 인류가 퍼지게 하셨지.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지하시지. 최초의 인간이 죄지을 수 있음을 예견하셨고 죽음의 징벌을 받은 인간이 낳는 후손들 역시 죽음을 안고 사는 존재가 되리라는 것도 예견하셨지. 동시에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 경건한 신앙인을 하나님 백성으로 불러들이시며 그들이 속죄와 성화에 의해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평화에 들어갈 것이라는 점도 예견하셨지. 이와는 반대로 지상의 도성에 속하는 자들은 악한 천사들과 어울려 지낼 것이라는 점 또한 하나님의 예견에 속하는 부분이라네. 말하자면, 인류 사회의 두 도성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견인 셈이지.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악한 천사들과 함께 형벌을 받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선한 천사들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두 도성의 차이와 구분이 나타난다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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