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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경과 신학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고후 4:10~15)

by 새로운 인생 새로운 도전 새로운 출발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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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사진:크리스천투데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 여정에서 우리가 닮아야 할 본이며,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분의 죽음과 생명을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경험하고 나타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우리의 고통과 시련이 어떻게 생명으로 변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지를 깊이 묵상하는 것은 우리 신앙 여정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10절에서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리스도가 당한 고통을 감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을 통해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몸소 체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사건을 이야기 할 때, 그분의 죽음이 과거 2천년 전에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회적 사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역시나 역사하는 현실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 삶에 짊어진다는 것은 그분의 희생적 사랑, 겸손, 순종의 자세를 우리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일의 선택과 결정 속에서, 우리는 그분이 보여준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의 태도를 모범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 삶에 품는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와 반대되는 십자가의 가치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은 힘과 성공, 명예를 추구하지만, 십자가는 희생과 봉사, 겸손의 길을 가르칩니다. 이 길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진정으로 품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새롭게 경험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고통과 실패, 실수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용서와 치유, 새로운 시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력을 우리 삶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역경을 뭐라고 이야기 하느냐면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스왈도 챔버스는 이 영경을 극복하는 비결을 어떻게 표현했느냐면?

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즐기는 습관을 갖는 것이라하였습니다. 주님의 뜻과 내 뜻이 일치하지 않을 때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즐겨하는 습관... 그 때 우리의 역경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나의 삶에 품는다? 주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을 때 내 뜻 내려놓고 주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을 산다?

말은 쉽지만 이게 과연 쉬운 말일까요? 우리의 뜻은 죽음이 아니라 삶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살려고 몸부림 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본능입니다.


1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

이것은 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즐기는 습관이 곧 신앙생활이래요. 생명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바울은 자신있게 자신의 삶이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있어요. 그것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25절에 보면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그러니까 역경만 바라보면 우리는 제대로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디모데후서 312절에 보면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고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믿음대로 살려고 하면 박해를 받는대요. 그런데 거기서만 끝나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지만... 그 뒤에는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낸대요.

 

바울은 로마서 1489절에서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죽음은 진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2.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생명의 능력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삶에 품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고백이 완전한 삶이 되기까진 시간이 필요 하겠지만...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의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이 곧 우리 믿는 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그분의 생명의 능력을 발견하는 삶입니다.

 

오늘 고린도 후서 4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단지 고난과 희생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이 생명의 능력은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시련과 어려움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며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합니다.

 

이는 우리의 약점, 실패, 심지어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우리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며, 이는 우리가 겪는 어떠한 고난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요한일서 54절에서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위로와 평안으로, 때로는 새로운 힘과 용기로, 또 때로는 용서와 회복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은 우리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계속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생명의 능력은 또한 우리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면,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도 그 변화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날 때, 그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과 생명을 전파하는 증거가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생명의 능력은 우리의 내적인 삶에서도 역사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우리의 영적 성장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이끕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은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신앙을 더욱 단단히 하는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이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길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이 되어줍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내 힘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인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고난을 통한 은혜의 확신과 영광 돌림

우리가 겪는 고난은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후서 4장에서 바울은 고난을 통해 은혜가 주어지며, 이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난이 단지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계획과 목적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난을 통한 은혜의 확산과 영광 돌림이라는 것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더더욱 의지하게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힘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분의 도움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필수적이며, 강력한 것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2) 우리의 고난은 타인에게 은혜를 확산시키는 기회가 됩니다. 바울은 12절에서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의 고통과 시련은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강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련이 다른 이들에게 믿음의 증거가 되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3)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이 됩니다. 15절에서 바울은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이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전파함으로써, 그들은 감사함을 느끼고, 이 감사함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의 시련은 결국 다른 이들의 구원과 영적 성장을 위한 통로가 되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게 됩니다.


이렇게 고난을 통해 은혜가 확산되고 영광을 올려드리는 과정은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성취되고, 그분의 사랑과 능력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을 신뢰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우리의 고난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의 고난은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 몸에 나타내고, 또한 그분의 생명을 우리 죽을 육체에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더 가까이 이끌고, 더 나아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는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을 믿은 믿음으로 다가오는 여러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까요? 아니면 그 믿음을 드러낼 환경을 허락해 주실까요?

 

또한 우리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주실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하실까요?

 

그리고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 용기를 허락해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상황을 허락해 주실까요?

 

우리는 기도하고 안 들어주신다고 하는데... 사실은 응답을 받았는데 그 응답을 인식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반응하니까 그것이 응답인 것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사야 11920절을 보면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가 즐겨 순종할 때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억지로 순종할 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억지로가 아니라 즐겨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주님은 생명으로 다가오시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지... 순종 했는데 왜 나에게 응답이 없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의 신앙의 자세에 대한 중요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 속에서 겪는 모든 시련과 고난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그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생명을 드러내는 거룩한 믿음의 산 증거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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