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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경과 신학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노래하는 다윗 (사무엘 하 1장)

by 우리모두함께 행복해요.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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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1. 슬퍼하는 다윗

 

다윗은 나의 성인 시절의 상상력을 자극해 바르게 슬퍼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커다란 비탄은, 끔찍한 상실과 그에 따른 모든 감정을 정직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루는 건강한 영혼의 심연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다윗은… 슬퍼하여”

다윗은 비탄에 젖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무엘하 1장의 비탄의 노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응답하며 하나님을 풍성히 누리고 살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체험에 다가가게 한다.

 

삶을 완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죽음과 완전히 대면해야 한다. 기묘하고 심지어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나, 이것은 사실이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다윗은 또한 격렬하게 비탄에 젖어들었다.

 

시편 70퍼센트는 비탄의 노래이다. 이 비가들은 다윗의 기도하는 삶에서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나온 것들이다. 다윗은 거듭해서 상실과 실망과 죽음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고난도 회피하거나 부인하거나 경시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에 정면으로 대면했으며 모든 것을 놓고 기도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 문화는 이것과는 너무도 끔찍한 대조를 보인다. 나쁜 짓이면 나쁜 짓일수록 더 큰 주목을 받는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거나 누군가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르면, 거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기사를 쓰고 기자들은 인터뷰하고 논설위원들은 논평을 하고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설교거리로 삼는다. 그리고 심리학적 분석이 행해지고 법을 고치게 하는 개혁안이 등장하고 대학에서는 연구 기금이 조성된다. 그러나 이 모든 와중에는 그 일에 대한 비탄의 글은 단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비탄이 없는 것은, 진리가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생명으로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2. 조가를 지어 부르는 다윗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했다. 다윗은 두 사람의 죽음을 똑같이 애도하고 똑같이 고귀하게 높인다.

 

, 나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울과 요나단이여!

함께 살았더니, 이젠 함께 죽었구나!

하늘에서 재빠르게 내려오는 독수리보다 더 재빠르고,

도도한 사자보다 더 강인했던 이들이여

 

울은 다윗을 증오하고 혐오했다. 그러나 다윗에겐 사울의 증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다.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하신 일이 사울이 다윗에게 한 어떤 일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다윗은 바로 이것을 인정했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로 선택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좌우되고 움직이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다윗은, 자신에 대한 사울의 증오가 아니라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에 입각하여 기도하고 결단했다.

 

다윗이 부르는 사울을 향한 비탄의 노래에는 관대함이 넘쳐흐른다.

 

, , 이스라엘의 영광이 죽었구나.

용사들이 쓰러졌다니, 쓰러졌다니!

가드에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

아스글론 거리에 이 소식이 전해지지 않게 하라.

상스런 블레셋 여자들이 이를 알고

신이 나서 술잔치를 열지 못하도록!

 

길보아의 산들아,

이제부터 너희 위에는 더 이상 이슬이나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

샘이나 우물에서는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으리라.

이 용사들의 무기가 진탕 속에 파묻혔고

사울의 방패가 거기에 녹슨 채 버려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여인들이여, 사울을 위해 울라.

그는 네게 멋진 무명옷과 비단옷을 입혀 주었고

너희를 우아하게 만들어 주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윗은 요나단을 사랑했다. 요나단에 다윗의 비가는 이 사랑이 얼마나 그의 영혼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었고 그에게 소중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 용사들이 쓰러졌다니, 쓰러졌다니!

전장의 한복판에서

요나단, 그 젊음의 절정에서!

 

, 나의 형제 요나단이여,

그대의 죽음에 내 가슴이 부서지오.

 

기적처럼 놀라운, 나를 향한 그대의 우정,

내가 아는, 아니 감히 기대조차 못할,

그 최고의 사랑.

 

다윗의 비탄에는 우리가 주목하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비탄은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윗의 비탄을 들어도 우리 속에는 그를 향한 동점심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찬탄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가?

다른 하나는 그것이 시로 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에는 운율이 있으며 참신하고 놀라운 은유들이 있다.

 

3. 슬픔의 노래를 유다 사람들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한 다윗

 

다윗은 자신의 슬픔을 비가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 노래를 배우라고 명령했다. 그것을 암기하고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 삼도록 말이다. 왜냐하면 상실은 결코 사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실은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비탄은 문화의 형상을 정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상실을 대하는 방식이 모여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가 되며, 그에 따라 우리는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아는 백성이 되기도 하고 못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것들과 더불어 이 비탄의 노래를 배우는 것, 잘 배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윗은 유다 사람들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 삶의 일부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사울의 적의와 요나단의 사랑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치라. 미움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사랑 때문에 겪는 고통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고통의 이 거대한 리듬을 어떻게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는지 서로에게 가르치라. 그리하여 우리 삶이 그 고통들로 인해 빈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도록 말이다.

 

비탄하는 법을 배우라. 다윗처럼 비탄하는 법을 배우라. 결국 우리는 죽게 되어있는 인간이다. 우리와 주변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이를 받아들이라. 당신의 십자가를 지라. 이것이 바로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야기 속에 있다. 결국 모든 것이 꿰어지고 모든 흩어진 조각이 하나로 맞춰져서, 나중에 우리가 , 이것이 바로 그때 그 일이 갖는 의미였구나!”하고 외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기억하라. 이 이야기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원대하고 광대한 이야기이다. 그분은 우리가 이 이야기를 삭제 편집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그 안에서 시를 노래하는 것은 참으로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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