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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 알림

꼬꼬무 '원주 사랑의 집' 장 목사 사건

by 우리모두함께 행복해요.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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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의 아늑한 산골에 자리 잡은 사랑의 집은 장진남 씨라는 이름으로 모든 이에게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그는 1964년부터 장애를 가진 아이들 23명을 하나둘씩 가족으로 맞이하여 진심으로 보살피며 장애인 복지를 위해 헌신해온 '천사 아버지'로 소문난 인물이었죠. '목'숨 바쳐서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을 '목사'라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1. 원주 사랑의 집

 

 

장 씨는 원래 1940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난 실향민으로, 어린 시절 남쪽으로 피난 온 사람입니다. 해병대에서 제대한 뒤 대구에서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장애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며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미혼으로 정관수술을 한 뒤에도 계속해서 장애 아이들을 하나둘씩 모아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터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언론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사랑의 집'은 더욱 많은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2. 밝혀지게 된 사실

2012, SBS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장 씨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부터 직함만 가진 가짜 목사였던 그는, 운영하던 시설도 정식으로 인가받지 않은 미신고 시설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망한 원생 두 명의 시체를 영안실 냉동고에 장기간 방치하며 장례조차 치르지 않는 등, 사망신고조차 하지 않고 장애인 수당을 부당하게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집에서의 생활은 원생들에게 있어 학대의 연속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노동에 시달리고, 심지어 몸에 문신을 새기는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가 이루어졌습니다.

 

 

장 씨는 입양한 아이들을 통해 엄청난 뒷돈을 챙기면서도, 실제로 그의 호적에는 21명의 아이들이 올라와 있었지만, 실제 남아있는 자녀 수는 4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 보조금과 후원금을 받아내며, 매스컴의 힘을 이용해 큰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장 씨가 사랑해서 찍었다는 피흘리는 장애인 사진

 

그러나 궁금한 이야기 Y의 취재로 그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분을 표하고, 장애인 단체들은 사랑의 집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장 씨 부부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취재진과 경찰, 검찰 등을 향해 무리한 대응을 했습니다.

 

 


3. 밝혀진 진실 이후의 일들

결국, 많은 시민들과 장애인 단체, 인권단체의 노력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가 시작되었고,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 씨는 구속되었으나,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여러 차례 언론과 단체들에 진정서를 보냈습니다.

 

 

이 사건에 분노한 한 누리꾼이 서명 운동을 시작했고, '장애인 21명을 입양 학대한 희대의 사기꾼을 역사가 심판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장애인 인권과 복지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고, 모든 이들이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서로를 보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집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있었던 원생들은 이제 다른 장애인 시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장성아 씨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만 했습니다. 사랑의 집을 떠난 후, 그녀는 직장암 3기라는 어두운 진단을 받았고, 병마와 싸우다가 20131월의 한 겨울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장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갈망하며, 아내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자식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20132, 법정에서의 재판은 장씨에게 명백한 증거가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혐의를 부인하는 장면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특별변호인 신청은 물론, 보석 신청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결국 춘천지법 원주지원 1심 재판부는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일부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 징역 36개월의 형을 선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에 대한 불공정함을 호소하며 대책위는 항소했지만, 상고심까지 이르는 모든 재판에서 동일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사랑의 집에서의 트라우마를 안고 내발산동을 떠난 원생들 중 한 명은, 24년의 시간이 흘러 경기도 이천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해 9,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고발됩니다. 내발산동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나려 5번의 탈출 끝에 가족과 재회한 원생의 증언은, 장씨 부부의 잔혹한 학대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팔에 문신을 한 탓에 잡혀 물고문을 당하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여성 원생을 대상으로 한 원장의 행동은 성폭행을 암시하는데, 이는 '도가니'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참혹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암매장된 원생이 6명에 이른다는 사실과 그들의 유해가 발산동 인근 야산에 묻혔다는 증언은, 이 사건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제도권 밖에 있기에 보호도 받지 못하고 감시받지도 않았던 사랑의 집. 하지만 현재에도 제2, 3의 사랑의 집이 어딘가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는 얼마나 될지 파악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꼬꼬무 방송에서는 이제라도 나라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제도적인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을 버리고 조금 더 예쁜 세상을 만들어 가길 빌었습니다.

 

 


결론

사랑의 집 장목사 사건은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있어 아직도 많은 개선이 필요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관련 법규와 시스템의 보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며, 모든 구성원이 경각심을 가지고 함께 노력해야 할 때임을 일깨워 줍니다.

 

2024.05.10 - [1. 정보 알림] - 꼬꼬무 울산 서준이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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