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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마약왕 이황순 – 장미정원의 비밀

by 새로운 인생 새로운 도전 새로운 출발 2024.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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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순은 한국 마약 범죄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의 범죄 행각은 마약 제조와 유통, 조직적인 범죄 네트워크 구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약왕으로 급격한 부상과 부를 누리게 되었지만 결국 몰락하게 됩니다.

 

 


1. 마약 제국의 건설: 이황순의 범죄 행각

 

이황순은 황해도 출신으로 충청북도에 있는 대학을 다니다 중퇴한 인물이었습니다. 60년대 후반에는 부산의 폭력조직 칠성파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70년대 본격적으로 밀수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마약 유통망을 구축하여 국내외에서 마약을 거래했습니다.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황순은 자신의 범죄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폭력과 협박을 동원했으며, 부패한 정치인들과 유착 관계를 맺어 자신의 활동을 보호받았습니다. 그의 범죄 행위는 사회 전반에 큰 악영향을 끼쳤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황순의 범죄 행각은 우리 사회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마약과 같은 불법 물질의 유통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부패와 불법의 고리를 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2. 권력과 부의 축적: 마약 거물의 부상

 

1970년대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마약 소비, 한국이 마약 제조, 대만이 원료 공급을 담당하는 삼각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만 상선이 가세한 밀수 조직이 마약 거래에 깊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추정됩니다.

 

 

그 당시 이황순은 38세의 나이로 밀수 조직의 주요 인물로 지목되어 징역 4, 벌금 1,433만 원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3년 후인 197512, 부산지구 밀수 합동수사반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밀수 조직 14개파 189, 폭력배 2개파 135명 등 총 324명을 구속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검거된 밀수 조직들은 각자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황순의 조직은 필로폰 밀조를 담당했는데, 수사반이 이황순의 집을 급습하여 시가 2억 원 이상의 필로폰 완제품과 반제품을 압수하고 공범 3인을 구속했지만, 두목인 이황순은 검거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황순은 아직 수감 중이어야 했지만, 이미 마약왕의 자리에 올라섰던 것입니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황순은 교도소 내에서 의무과장과 보안계장을 매수하여 폐결핵 진단서를 위조,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또한 1975년 당시 이황순을 놓친 이유는 치안본부 경찰들이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고 사전에 정보를 흘려 도주를 도왔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양양이 짱가네

 

이황순이 전설적인 마약왕이라 불리게 된 것은 필로폰 밀조 규모가 국내 최대 수준이었고, 품질 또한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검거 과정과 그의 대저택의 위용이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3. 운명의 전환점: 체포와 심판

 

19803, 부산지검 특수2부는 이황순의 거처에 대한 제보를 받고 그의 저택 앞에서 잠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택이 외진 곳에 위치해 감시할 공간이 마땅치 않자, 수영만에 보트를 띄워 놓고 망원경으로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사흘에 걸친 잠복 끝에 승용차로 귀가하는 이황순을 확인한 경찰은 자택을 급습했습니다. 수사관 10여 명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자, 이황순은 레밍턴 5연발 라이플을 들고 나와 모두 쏴 죽이겠다며 위협하며 맹견 4마리를 풀어놓고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경찰은 무장경관 50명을 동원해 집을 포위하고 셰퍼드 1마리를 사살했습니다. 이에 이황순은 엽총을 난사하고 돌과 빈 병을 던지며 저항했습니다. 자수를 권유하려 형을 들여보내 설득하였으나, 이황순은 자살하겠다며 소리를 지르다 엽총을 가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형의 제지로 오른쪽 어깨 관통상을 입었고,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수색 과정에서 드러난 이황순의 저택 실체는 범상치 않았습니다수영만이 내려다보이는 산중턱 고급 별장지에 위치한 이 집은 매우 정교한 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입구에는 철제 대문이 있었고, 그 뒤에 또 다른 대문이 있는 이중 대문 구조였습니다. 대문 양쪽과 옥상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고성능 음파 탐지기로 바깥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붉은 벽돌 담과 대문 위에는 경보 장치가 있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집안에는 4마리의 경찰견이 있었는데, 이들은 매우 잘 훈련되어 있어 명령어를 잘 알아듣고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이 집은 강화된 보안 시스템으로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집의 장미꽃과 정원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정원의 지하에 10평 넓이의 마약공장을 마련해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필로폰 제조 과정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수영만 하구의 폐수와 인근 목재회사 저목장에서 나는 악취로 감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수색을 통해 정원 지하실 외에도 경비실 지하 1평 규모의 또 다른 지하실과 2층 방 장롱 속 천장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발견되었고, 이곳에서 시가 3억원 상당의 필로폰 3킬로그램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마약 운반 시 위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포장마차 리어카도 확인되었습니다.

 

 

이황순 검거 과정에서 그를 비호해온 배후 세력에 대한 수사도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72년 가짜 진단서로 받은 형집행정지와 75년 밀수수사 정보 유출로 인한 도주 방조 등의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부산 파견 근무 당시 이황순과 밀접했던 보사부 마약과 감시계장 김모 씨가 현장 검증을 하던 중 도주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경찰 100여 명을 동원해 수색했지만, 그가 스스로 벗어 두고 간 수갑과 인근 전당포에 맡긴 롤렉스 시계만 찾았을 뿐 도주한 감시계장은 끝내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어깨 총상을 치료하고 재판에 임한 이황순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불과 45세의 나이였습니다. 19814월 형 확정 이후로는 그의 행적에 대해 확인된 바가 없지만, 이미 중증 마약중독자였기 때문에 남은 삶이 평탄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결론

이황순은 한국 마약 범죄의 대표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의 범죄 행각은 마약 제조와 유통, 조직적인 범죄 네트워크 구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결국 체포와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마약 범죄의 폐해와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약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강력한 법 집행과 함께 예방 교육, 치료 지원 등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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