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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 알림

꼬꼬무 온두라스 한지수 작전명 집으로

by 우리모두함께 행복해요.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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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에서는 6월 20일 작전명 '집으로'라는 제목으로 온두라스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한지수 씨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합니다. 2008년 온두라스에서 발생한 네덜란드 여성 살인 사건.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한지수 씨의 삶과 혐의, 그리고 이 사건이 남긴 여운에 대해 탐구합니다.
 


1. 온두라스 살인 사건의 발생

 
1) 온두라스 사건 인물관계
 
(1) 댄 - 한지수: 강사와 수강생 관계
한지수 씨는 2008년 6월 10일 온두라스 로아탄 섬에 입국하여 다이브마스터 및 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다이빙 샾에는 7명의 강사가 있었고, 댄은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원래 한지수 씨는 다른 다이브마스터 과정 참여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으나, 8월 초에 모두 과정을 마치고 출국하자 돈을 아끼기 위해 댄의 집으로 이사했습니다(8월 15일).
 
(2) 댄 - 마리스카: 강사와 수강생 관계
마리스카 역시 다이빙 코스를 밟았고, 댄이 일부 과정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리스카의 국적은 네덜란드였습니다.
 
(3) 한지수 - 마리스카: 무관
사건 전날 이전에 두 사람이 만난 적은 없습니다.
한지수 씨는 강사 과정에 집중하느라 샾에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사건의 전말(2008년 8월 22일)
 
(1) 오후 10시~11시
- 댄이 여자들 몇 명(마리스카 포함)과 함께 다이빙 샵 근처 바에 옴
- 마리스카를 처음 만나 서로 소개함
-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술을 마심
 
(2) 밤 12시~1시
- 댄과 마리스카가 바를 떠나 집으로 향함
- 집까지 걸어서 약 15분 거리, 지수 씨가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댄과 마리스카가 도착
 
(3) 새벽 3시경
- 지수 씨가 잠에서 깨어났고, 화장실 문이 열리며 마리스카가 앞으로 쓰러짐
- 댄이 마리스카를 돌보며 지수에게 도움을 요청
- 마리스카가 의식이 있었고 기본적인 반응을 보임
 

 
(4) 아침 6시경
- 지수 씨가 댄의 방에서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는 마리스카를 발견
- 마리스카가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이자 댄이 구급차 요청
- 댄과 옆집 남자가 마리스카를 옮기고 CPR을 실시
 
(5) 병원 이송
-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되었고, 응급실로 옮겨짐
- 의사와 소통이 어려웠으나 마리스카의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보임
 
(6) 사후 처리
- 집에 돌아와 댄이 청소를 하고 있었음
- 아침 8시경 다이빙 샵으로 가서 매니저에게 사실을 알림
- 경찰이 댄을 데리러 옴
 

 


3) 사건 이후
 
- 댄은 구속되어 로아탄의 경찰서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지수 씨는 당일 날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였습니다.
 
- 8월 26일 강사 시험을 보러 옆 섬(Utila)로 갔는데 Course Director가 댄의 변호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로아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당일 전용 비행기를 타고 로아탄 섬으로 돌아와 댄의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 다음 날(27일) 법원에 가서 증인으로서 진술을 하였습니다. 진술 이외에 변호사 측의 질문과 한지수 씨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왜 청소를 하였는가? : 마리스카가 죽은 지 모르는 상태였고, 방을 치우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2) 누가 청소를 하였는가? : 옆집 여자가 청소를 하고 있었고, 댄과 내가 그것을 도왔다.
 

 
- 이후 판결이 어떻게 났는지 지수 씨는 직접적으로 듣지 못하였고, 댄이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달간 온두라스에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댄이 풀려나는 것을 보았으나 그 다음날(28일) 댄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 법정 증언으로 인해 강사 시험을 보지 못한 한지수 씨는 다음 달에 있을 강사 시험 때문에 한 달을 더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달 동안 계속 온두라스에 있었으나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 쪽 대리인이 찾아와서 한번 댄의 행방을 물었으나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 한 달 후 강사시험을 치르고 출국(9월 말)하였으나 아무런 조치도 없었습니다. 미국에 약 3주간 머물렀다가 한국에서 약 2개월간 있다가 이집트에 다이빙 강사를 하러 12월 말에 다시 출국하였습니다.
 

 


2. 한지수, 용의자로 지목되다. (이집트 구속 과정)

 
1) 2008년 12월부터 이집트 다합에서 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스쿠버 다이빙 강습을 진행했습니다.
 
2) 2009년 8월 27일, 카이로 공항에서 출국을 하려다 여권 심사대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후 공항 내 경찰대로 끌려갔습니다.
 

 
3) 약 3-4시간 후, 인터폴로 수송되어 Samir Saad라는 Interpol Inspector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수 씨의 여권 사진이 있는 사건 파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Daniel Ross와의 관계 및 사건 전말을 물었습니다.

 
 
4) Samir Saad는 한지수 씨에게 즉시 온두라스로 갈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물었지만, 지수 씨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현재는 안된다고 대답했고, 영사 연락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5) 이후 법원으로 이동되었고,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과 수갑을 나눠 찼습니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남자가 사건 전말을 진술하게 했고, 이를 아랍어로 번역하여 서기관이 받아 적었습니다.
 
6) 질의응답이 끝나자 아랍어로 된 진술서에 서명하라고 했고, 한지수 씨는 이를 서명했습니다(나중에 큰 실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7) 이후 Takshibit이라는 감옥으로 수송되어 감금되었고, 누차 영사 접촉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8) 감옥에 5일 정도 있던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수감자가 들어왔고, 한지수 씨의 사정을 설명하며 언니의 연락처를 전달했습니다.
 
9) 2일 후인 9월 3일, 주이집트 대사관 영사가 감옥을 방문했고, 이를 통해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10) 9월 10일 영사가 재방문하여 온두라스로의 송부가 거의 확정적이라고 말했고, 17일 다시 방문해 송부일자가 22일 새벽으로 확정되었다고 전달했습니다.
 
 


3. 혐의와 재판 과정

 
1) 혐의 내용
2008년 8월 22일, 온두라스 로아탄섬에서 네덜란드 여성 마리스카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지수 씨가 이 사건의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2) 재판 과정
온두라스 검찰은 부검 보고서를 증거로 제시했지만, 피해자의 목 부위 상처가 응급처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지수 씨는 자신이 무고한 사람임을 주장했지만, 온두라스 당국의 부실한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리세이바 교도소에 수감 되었습니다.
 

 
 


3) 억울함을 호소한 한지수 씨의 편지

전 왜 여기 있는 거죠…?


눈앞에 의식이 혼미해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고요. 하지만 그 대가로 저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어머니께 꾸중만 들어도 그게 억울한 일이면 버럭 화가 나는데, 이런 일을 겪으면서 어떻게 마음이 고요할 수 있을까요. 무섭고 억울했지만 애써 생각하려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죄가 없으니 잘 풀릴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했죠. 하지만 2차 심리에서 살인죄가 적용되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판사의 판결을 들었을 때는,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정신은 혼미했고 울분에 휩싸였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며칠 그렇게 먹먹한 가슴으로 멍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정신차리자, 냉정해지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자꾸 눈물이 납니다. 그 동안 눈물은 충분히 흘렸다고 생각했지만 목까지 차오르는 뜨거움은 또 다시 눈물이 될 태세입니다. 크게 심호흡을 합니다. 그 여파로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입술을 지긋이 물고,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만한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다시 모든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돕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스카가 새벽에 쓰러졌을 때부터 저는 댄이 마리스카를 돌보는 것을 도왔습니다. 제가 댄에게 병원에 가야하는지 물었지만 댄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마리스카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댄이 EFR 강사이고, 그녀의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나보다는 더 잘 판단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이웃집 및 주유소까지 뛰쳐가서 도움을 청한 것도 저였습니다. 어느 살인범이 범행 직후 도움을 청하고자 할까요? 제가 돕고자 했던 것은 이웃과 주유소 직원 등 모든 증인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또 댄이 구속되고 난 후에는 저를 비롯한 모든 다이빙 샾의 스탭들이 댄을 돕고자 하였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댄이 억울하게 잡혀있다고 모두들 생각하였기 때문에, 다들 그를 돕고자 했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댄의 도주 후에 마리스카의 가족으로부터 오는 연락에도 응하며, 최대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분들이 마리스카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문점에 제가 알고 있는 한 최대한 성의있는 답을 주기 위해 노력했었죠.


하지만 이런 모든 노력은 무시되고 검찰은 저를 범인으로 몰기 위한 억측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마리스카의 몸의 많은 멍 자국이 폭력으로 인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녀가 취해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부딪혔고(밤중의 우당탕 소리), 댄에 의해 침대에서 바닥으로 끌어내려 졌고(CPR을 위해), 오랜 기간 CPR이 행해졌으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2층에서 1층으로, 트럭으로, 그리고 또 병원 카트로 옮겨 졌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일련의 과정에서 몸에 상처하나 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검찰은 팔의 멍 자국은 압박으로 인한 거고 누군가가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옆집 남자가 댄과 마리스카를 옮길 때 자신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런 모든 사실을 무시한 채 무조건 ‘맞은 흔적’ 혹은 ‘타살 흔적’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검찰 측은 비공식적으로 댄과 마리스카와 제가 삼각관계이고, 애정문제로 인한 살인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댄은 마리스카 이전에도 여자를 데려온 적이 있었고(불과 하루 이틀 전이었습니다) 댄이 제가 이사하기 전에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여자를 데리고 와도 되냐고요. 저는 크게 소음만 내지 않고, 제게 방해만 되지 않으면 된다고 했었죠.


게다가 검찰 측의 증인 중 누구 하나도 ‘한지수가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증언한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검찰 증인 중 한명은 마리스카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것을 봤다고 했고요. 또 증인 셋 모두 당시 마리스카의 몸 상태를 물었을 때, 얼굴의 상처(넘어졌을 때 생긴 흔적)를 제외하고는 언급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몸에 난 상처가 운반 도중이나 CPR 로 생긴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요.


저는 사건 이후에 온두라스에 한 달 더 머물렀습니다. 다이빙 강사 시험을 보기 위함이었죠. 만약 제가 범인이었다면 댄이 한 것처럼 사건 직후에 출국했겠죠. 다이빙 강사 시험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한 달을 더 기다렸다가 목표했던 강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출국했습니다. 출국 시 그리고 한 달 간 머물면서 어떠한 제재나 연락도 없었구요.


저를 슬프게 하였던 것은, 로아탄의 경찰서에 수감되어있을 때 다이빙 샾의 주인인 Gay가 저에게 한 말입니다. 제가 붙잡혀 들어온 것을 본 사람들은 ‘남을 돕다가는 나도 저 애처럼 될지도 몰라’ 하며, 몸을 사리고 있고, 심지어 제가 있는 감옥에 조차 나타나기를 꺼려한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댄이 수감되었을 때는 다이빙 샾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 였지만, 제가 수감되었을 때 저를 찾아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게다가 이 사건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Steve 라는 샾의 강사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자 네덜란드 대사가 로아탄 섬으로 직접 와서 글을 내리라고 협박했다고 하더군요. 이곳은 네덜란드의 속국일까요? 아니면 그저 돈에 의해 움직여지는 후진국일까요?


다이빙만 할 때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나서 알게 되었죠.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 후진국이다 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기 교민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도 다들 구경만 하지 다가가지 않는다고요. 자기가 자칫 혐의를 받을까 두려워서 죽은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은 돕지 않는다는 겁니다. 뒤늦게 이 말을 들은 저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리고 이집트에서 우리 영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주이집트 대사관에서 온두라스 검찰에 영장을 취소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검찰은 증거를 갖고 있다며 제가 무죄라는 것을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면 영장을 취소하겠다고 했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도대체 무슨 증거를 말하는 것일까요? 영화에나 있을법한 가짜 증거라도 만들었다는 뜻일까요.


그런데 막상 온두라스에 와서 보니 그 증거라는 게 새로 바뀐 부검보고서였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제가 그 ‘살인’에 직접 간여했다는 아무 구체적인 내용도 없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곳 온두라스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을 혐의자로 몰고 ‘자 이제 네가 무죄임을 증명해라’ 라고 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더군요.


제 사건을 지켜본 다이방 샵의 한 영국인 강사는 ‘난 여기서 누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절대 멈춰 서서 돕지 않을 거야. 영국이라면 당연히 차를 멈추고 도와주겠지만 온두라스에서는 그러지 않는 게 훨씬 현명한 거야’ 라고 까지 말하더군요.


저는 이런 나라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도왔다는 이유로 지금 살인범으로 몰려 있습니다.


…한동안 제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더듬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진실이 뭔지 알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 측의 압력으로 온두라스는 ‘누구든지’ 잡아 넣어야 했고, 그것이 이 나라의 현실과 맞물려 그 자리에 있던 제가 된 거죠.


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끌고 나가서 저를 범인으로 만들어 사건을 종결시키려 합니다. 처음부터 아무 증거조차 없었던 사건에서 제가 난데없이 혐의를 받았다는 사실은, 결국은 이 모든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에 저는 무섭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지켜보게 하고 싶습니다. 부패한 이 나라의 검사, 판사들도 보는 눈이 많으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사법절차만 보장된다면 저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은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마리스카를 죽이지 않았고 그저 살리려고 도왔을 뿐이니까요.


온두라스는 인권단체를 의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 및 해외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계속 억지를 부리지 못할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제가 의지할 곳은 우리 정부와 대사관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와 주시기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관심을 보여주신 네티즌 여러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노력과 사랑의 덕분으로 지금 제가 버텨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심 부탁 드립니다.


제가 네덜란드 정부와 부패한 이 나라 공무원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온두라스에서, 한지수 드림

 

 
 


4) 496일간의 싸움
 

동생 한지수 씨의 억울한 사정을 알린 내용 - 이러한 노력으로 국민의 관심사를 얻게 되었다.

 

 

한지수 씨에게 무죄가 선고되기 전 온두라스 법정

 
한지수 씨는 2010년 10월 최종적으로 무죄를 받았습니다. 이후 여러 방송 매체를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전해졌고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녀의 무사 귀환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무죄를 선고를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녀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그녀의 아버지와 또 그녀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한지수 씨의 사건이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한·온두라스 정상회담에서 공정한 재판을 요청했으며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는 현지에 직원을 파견해 무죄를 밝히려고 힘썼다고 합니다.
 

`한지수 무죄' 한국찾은 온두라스 판사 (서울=연합뉴스) 네덜란드인을 살해한 혐의로 억울하게 기소됐던 한지수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수야빠 요라니 무노즈 산토스 데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판사. 외국법관연수차 한국을 찾은 그는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씨에게 내린 무죄 판결은 정당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2011.7.31

 
 

무죄선고 받은 온두라스 한지수 씨 (서울=연합뉴스) 온두라스에서 살인혐의로 가택연금 중인 한국인 여성 한지수(27)씨가 17일 오전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원종오 주 온두라스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이 한지수(가운데)씨를 찾아 위로하고 생필품과 의약품 등을 전달하고 있다. 2010.10.17 한지수씨 가족 제공

 
 


결론
이 사건은 외교관의 자국민 보호 기능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외교관은 문서 수발과 더불어 자국민 보호가 기본 업무이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외교관의 자국민 보호 기능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종합적으로, 한지수 씨의 온두라스 억울한 감옥 사건은 현지 사법 체계의 문제와 외교관의 자국민 보호 기능 미흡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국가의 자국민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가족과 온라인 상의 많은 분들의 호응이 없었다면 이 일은 조용히 묻히게 되었고 한지수 씨는 30년 형을 받아 지금도 온두라스 감옥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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