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축구단의 에이스 김용식은 일제강점기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1936년 올림픽에서 8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의 플레잉코치와 감독으로서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 한국축구의 영웅 김용식 생애
김용식은 1910년 7월 25일 “대한제국”시절 경성,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용식의 부모는 둘 다 기독교인이었고 목사인 아버지 “故 김익두”목사는 아들이 커서 목사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순수 공부만 하면서 자라길 바랐고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시켜보았습니다.
김용식은 “스케이트”에 입문하게 되고 그렇게 계속 본인의 재능 찾기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용식은 “축구”로 배우는 종목을 전향하게 됩니다. 하체 쪽에 훈련을 굉장히 많이 해야 하는 스케이트였기에 자연스럽게 축구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김용식은 경성 경신 중학교를 거쳐 경성 경신 고등 보통학교로 갔고 경성 보성 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경성 축구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경성축구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한 것입니다.
당시 그는 조선 선수로서 유일하게 축구 종목에 참가하였고, 팀은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축구의 기술적 요소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이후 '1만 일 훈련'이라 불리는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끊임없이 발전시켰습니다.
해방 후, 김용식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플레잉코치로 발탁되어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 후 1952년 김용식은 오랜 선수생활 끝에 현역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곧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김용식은 선수들을 선발해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을 준비했고 월드컵 처녀 출전을 위해 또 한 번의 여정에 돌입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시아 지역에 축구를 하는 국가가 몇 안 됐습니다. 해방 후에 대한민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전부였습니다. 스위스 월드컵 참가국 중 아시아 지역에 배당된 티켓은 총 1장이었고 대한민국과 일본 중국 총 3개국이 월드컵 티켓을 놓고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반 아시아를 단독으로 호령했던 중국이 기권을 했고 티켓 전쟁은 한-일이라는 2파전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경기 규칙은 홈&원정 1,2차전을 펼친 후 전적을 따져 가장 높은 전적을 가진 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김용식은 감독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195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한국 축구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한 골만 넣자"라는 명언은 전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김용식의 헌신과 노력은 단순히 축구의 경계를 넘어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한국 축구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받으며, 이후에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및 기술지도위원장으로서 축구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한국 축구의 역사를 빛내고 있습니다.
2. 올림픽에서의 역사적인 순간들
김용식은 올림픽에서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통해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인 인물로 기억됩니다. 그의 첫 번째 올림픽 경험은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으로, 그는 일본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습니다. 당시 조선 선수로는 유일하게 축구 종목에 출전한 김용식은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팀은 강력한 상대들을 물리치고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성공은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김용식의 개인적인 기술적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해방 이후, 김용식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플레잉코치로서 다시 한번 올림픽 무대에 나섰습니다.
특별했던 건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되고 “대한민국” 태극기를 유니폼 가슴에 달고 나간 최초의 국가 대항전이었습니다. 김용식은 선수겸 코치로 또 한 번의 역사를 세우게 됩니다.첫 경기 멕시코전에서 5-3으로 승리하고 대한민국은 최초 국가 대항전에서 8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됩니다. 비록 8강전에서 스웨덴에게 0-12 엄청난 완패를 하게 되지만 8강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두고 한국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팀을 이끌고 8강에 진출하며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당시 팀은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였고, 김용식의 지도 아래 선수들은 전투적인 정신과 기술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한국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독립 국가로서의 존재감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김용식의 올림픽 경험은 단순한 경쟁을 넘어,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축구를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주었고, 그가 남긴 "한 골만 넣자"는 말은 전후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그의 올림픽에서의 성과는 한국 축구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세대의 선수들에게도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김용식의 올림픽에서의 역사적인 순간들은 한국 축구의 발전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3. 감독으로서의 여정과 유산
김용식의 감독으로서의 여정은 한국 축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기로 평가받습니다. 1952년에 현역 선수로서 은퇴한 후, 그는 곧바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팀은 1954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는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로, 그의 지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김용식은 전술적 접근과 선수 관리에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기술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준비도 강조했습니다. "다 져도 좋다. 그러나 한 골만 넣자"라는 그의 유명한 발언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전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팀의 전투적인 플레이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김용식은 1960년 AFC 아시안컵에서도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며, 한국이 아시아 축구 무대에서 우뚝 서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한국은 1960년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고, 후배 선수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김용식의 유산은 단지 성과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및 기술지도위원장으로서 한국 축구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였고, 한국 축구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헌신과 노력은 후대의 감독과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축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985년 국가 문화체육 공로상 수상을 하기도 합니다.
2004년 FIFA에서는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한국과 아시아 축구에 많은 역사들을 세운 김용식의 공로를 인정해 100주년 기념 인물로 선정했고, 2005년엔 대한축구협회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명예의 전당”에도 첫 번째로 헌액 됩니다..
김용식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그의 이름은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결론
김용식은 경성축구단의 에이스로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쓴 인물입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조선 선수로는 유일하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 8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플레잉코치로서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8강까지 진출하며 한국 축구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195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은 역사적인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었고, 그의 유명한 "한 골만 넣자"는 말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김용식의 헌신과 노력은 한국 축구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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